비만 모델 쓰면서 ‘조던’ 팔던 나이키의 몰락

FILE PHOTO: People descend stairs inside a Nike store in New York City, U.S., April 2, 2025. REUTERS/Kylie Cooper/File Photo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312>

日아식스 신발 팔다가 ‘에어 밑창’으로 혁신

조던과 ‘저스트 두잇’…美문화 패권 상징으로

‘온라인 퍼스트’ 존 도나호 탓 도매시장 퇴장

옛 한정판 되팔고 中 부진…PC주의도 구설

18년 만에 S&P100 퇴출…반등도 쉽지 않아

 

한때 글로벌 스포츠 의류 브랜드의 대명사였던 미국의 나이키가 혁신 실패로 최근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실적이 정체되고 경쟁 브랜드에 추격을 당하면서 18년 만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100지수에서도 제외됐다. 나이키를 추락시킨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의 부진과 무리한 소비자 직접 판매(DTC) 전략 고수가 꼽힌다. 여기에 과거 한정판 제품의 재발매 반복, PC주의(정치적 올바름) 마케팅 전략에 대한 거부감 등도 상당수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게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월가에서는 나이키가 새 최고경영자(CEO) 체제 아래에서 재건을 시도하고 있지만, 단기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8일(현지 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나이키는 전 거래일보다 0.78% 하락한 38.10달러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에는 37.90달러까지 내려갔다. 나이키는 올 들어 최악의 주가 하락을 겪고 있다. 8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간 주가 하락률은 9.52%, 1년 동안은 48.62%에 달한다.

특히 2021년 11월 5일 기록한 역대 최고가 177.51달러에 비하면 5년 만에 주가가 78.5%나 떨어졌다. 시가총액도 2021년 말 2640억 달러에서 현 565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4일 S&P다우존스인디시즈는 나이키를 오는 21일 뉴욕 증시 개장 전 S&P100 구성 종목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S&P100은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대형 우량기업 100곳으로 구성된 지수다. 나이키는 지난 2008년 12월부터 이 지수에 줄곧 이름을 올렸다. 나이키가 빠진 자리에는 PC 제조회사 델과 샌디스크, 팔로알토네트웍스, 아리스타네트웍스 등 기술기업들이 꿰차게 됐다. 나이키는 그나마 S&P500지수에는 남게 됐다.

나이키가 스포츠 의류 업계의 최고 프리미엄 브랜드로 군림한 게 엊그제였음을 감안하면 나이키의 S&P100 퇴출은 월가는 물론 한국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나이키는 오리건대 육상 코치였던 빌 바워만 전 이사와 그의 제자이자 회계사였던 필 나이트 전 CEO가 1964년 공동 창업한 기업이다. 원래 기업명은 블루 리본 스포츠로, 신발 제조사가 아닌 판매사였다. 일본 아식스의 전신인 오니츠카 타이거 운동화 200켤레를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육상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파는 게 주업이었다.

나이키가 독자적인 신발 제조사로 출발하게 된 때는 오니츠카 타이거와 유통 계약이 종료된 직후인 1971년이었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첫 직원이었던 제프 존슨이 꿈에서 본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의 이름에서 땄다. 나이키를 상징하는 스우시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이었던 캐롤린 데이비슨이 나이트 전 CEO의 의뢰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다. 니케 여신의 날개와 역동성을 상징하는 이 형상은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됐다.

별 볼 일 없는 스포츠용품 업계 후발주자였던 나이키가 도약한 계기는 바로 조깅화였다. 1970년대 미국에서 조깅 열풍이 일었을 때 당시에도 이미 업계 선두주자였던 아디다스는 이에 시큰둥하게 반응했고, 나이키는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이에 더해 바워만 전 이사는 1972년 아내의 와플 기계에서 영감을 얻어 고무를 부어 만든 밑창을 개발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최초의 자체 운동화 ‘코르테즈’의 대성공은 나이키의 비상에 날개를 달았다.

◆ 냉전 이후 美문화 패권 아이콘 된 ‘저스트 두 잇’…‘디지털 퍼스트’ 존 도나호 이후 도매 매장 퇴장

1979년 나이키는 항공·우주 기술자 출신인 프랭크 루디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업계 최초로 밑창에 공기를 넣은 운동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1982년에는 ‘에어포스 1’을 통해 이 기술을 농구화에 접목하면서 성공 신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1980년대 중반 에어로빅 열풍을 등에 업은 리복에 밀려 주춤했던 나이키는 1984년 당시 신인이었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후원 계약을 맺으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85년 출시된 ‘에어조던 1’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나이키를 독보적인 업계 1위로 올려놓았다. 1988년에는 전설적인 슬로건 ‘저스트 두 잇(일단 해봐)’을 선보이며 단순한 스포츠용품 브랜드가 아니라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를 점령한 미국의 문화 패권을 상징하는 일종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90~2000년대에도 골프의 타이거 우즈,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와 세레나 윌리엄스, 축구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농구의 르브론 제임스 등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위대한 서사에 브랜드 이미지를 투영하는 마케팅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나이키 신화의 몰락은 2020년 이베이와 베인앤드컴퍼니 출신의 정보기술(IT) 전문가 존 도나호 전 CEO의 취임이 기점이 됐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과 함께 나이키를 이끌게 된 도나호 전 CEO는 풋라커, ABC마트 등 나이키와 수십 년간 함께한 도·소매 유통 협력업체들과 관계를 칼로 무 베듯 끊어버렸다. 비대면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이유로 온라인 중심의 직접 판매에 매진한다는 전략이었다. 중간 유통업자의 마진을 줄여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포석도 있었다.

취임 초에는 팬데믹 시기 비대면 확산 기대를 업고 회사 주가가 2021년 11월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나이키가 스포츠용품 기업에서 IT 업체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는 호평도 이어졌다. 문제는 본업인 스포츠용품 판매에서 발생했다.

기존 스포츠용품 매장 진열대에 나이키 제품 대신 온, 호카 등 신진 브랜드와 부활한 아디다스 등이 대거 배치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소비자들이 나이키 제품을 체험할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자 직영과 온라인 판매 매출까지 동반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나이키가 시장에서 제 발로 나간 꼴이 돼, 경쟁사에는 시장 점유율을 내주고 재고 수준만 높이는 결과로 돌아왔다.

◆ 과거 히트작 한정판만 되팔고 中시장 부진…PC주의 마케팅 구설 속 반등 쉽지 않아

나이키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은 단순히 유통 구조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나이키는 도나호 전 CEO 등 데이터와 효율만 중시하는 베인앤드컴퍼니 컨설턴트 출신 경영진이 회사를 장악한 뒤로 스포츠 브랜드의 본질인 운동화 혁신 기술의 개발도 등한시했다. 나이키는 새로운 기술을 가미한 제품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에어조던·에어맥스·에어포스 등 기존 클래식 모델을 색상만 바꿔 한정판으로 되파는 마케팅에 과도하게 의존했다. 한정판을 너무 자주 출시하면서 제품의 희소성은 사라졌고, 기술 혁신은 정체됐다. 소비자들의 뇌리에 ‘나이키 운동화=최첨단’이라는 공식은 깨지고 ‘소장용’이라는 인식만 자리 잡았다.

설상가상 그간 성장세를 견인했던 중국 시장에서도 크게 밀려났다. 2021년 나이키 연간 매출의 20%에 육박하던 중국 시장 비중은 현재 13% 수준으로 낮아졌다. 중국 소비자들은 안타·리닝 등 ‘궈차오(애국 소비)’ 열풍에 올라탄 값싼 토종 브랜드가 부상하자, 최근 몇 년간 나이키에서 대거 이탈했다. 나이키의 중국 매출은 2025 회계연도 1분기(2024년 6~8월)부터 2026 회계연도 4분기(2026년 3~5월)까지 8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2026 회계연도 연간 중화권 매출(58억 5000만 달러)도 전년도보다 13%나 줄어들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고급 스포츠 브랜드 수요까지 온과 호카로 옮겨가면서 전 세계 신발 시장에서 차지하는 나이키의 점유율은 2022년 25.9%에서 지난해 22.9%로 줄어들었다.

나이키의 2026 회계연도(2025년 6월~2026년 5월) 연간 매출은 464억 달러로 전년도(463억 달러) 수준을 겨우 유지했다. 이마저도 환율 변동 효과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2% 감소했다. 전성기였던 2024 회계연도(514억 달러)와 비교하면 매출이 9.7%나 증발했다.

실적 악화의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도나호 전 CEO 취임 전후 추진된 PC주의(정치적 올바름) 마케팅 전략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낳았다. 나이키가 기존 편견을 깨고 트랜스젠더, 비만 여성, 제모 거부 운동가 등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자 스포츠 본연의 기능성과 선수들의 열정에 열광하던 소비자들은 정치·사회적 과잉 메시지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나이키 입장에서는 나름 다양한 소수자 그룹들을 끌어들여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큰 빛을 보지 못했다. ‘누구나 되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라는 기존 이미지에만 타격을 줬다는 평가도 많다. 겉으로는 인권과 소수자 보호, 정의를 외치면서 정작 해외 열악한 생산 환경과 아동 노동 논란 등은 해결하지 못한다는 위선 논란에도 휩싸였다.

나이키는 2024년 10월 엘리엇 힐 현 CEO 취임 이후 유통업체와의 관계 복원과 신제품 출시에 다시 매진하고 있지만, 월가의 시선은 아직 싸늘하다. 월가에서는 나이키가 실추된 시장 점유율과 브랜드 이미지를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잭스인베스트먼트의 브라이언 멀베리 수석 시장전략가는 “도매 관계와 공급망 개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본격적인 반등까지는 3~4개 분기 정도 더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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