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 살면 매일 두 개의 미국을 본다.
하나는 법을 지키고 성실하게 문을 여는 가게 주인들의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성실을 비웃듯 거리에서 법을 어기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지는 사람들의 미국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보수와 진보,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섹터로 나누어 봤다. 그러나 문제는 섹터가 아니었다. 사회 전체를 보는 눈이 사라진 것이 문제였다.
개인화의 극대화는 필연이다
온라인 공동체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취향 맞는 사람끼리 모여 서로의 확증만 강화하는 곳이다. 이 분절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40년간 우리가 선택한 결과다. 사람이 귀찮고, 공동체는 불편하다고 말해온 대가다.
그래서 AI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사람을 고용하기 싫고, 이웃에게 묻기 싫어진 사회의 끝에 반드시 등장해야 할 존재가 AI다.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자, 인간 자체를 대체하는 기술을 부른 것이다.
많은 사람이 AI를 공동체의 종말로 본다. 나는 다르게 본다. AI는 인류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직접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도구다.
대의제는 정보가 비싸서 만든 타협이었다.
국민이 모든 이슈를 공부할 수 없으니 대표에게 위임한 것이다.
이제 정보 비용은 0이 되었다. 각자의 가치관을 학습한 개인 AI가 매일 쏟아지는 수천 개의 안건을 번역해주고, 우리는 버튼 하나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4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하는 민주주의. 모든 개인이 1인 정당이 되는 시대다.
마지막 끈은 돈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그 돈이 아니다
모두가 극도로 개인화되면 무엇으로 묶이는가. 나는 돈이라고 본다.
돈을 탐욕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돈은 탐욕이 아니다.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다.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는 수단이며, 열심히 일해서 번 것에 대한 사회의 서명이다.
돈이 천박해진 것이 아니라, 약속이 깨졌기 때문에 돈이 천박해 보이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약속, 대학 가면 더 나은 삶이 산다는 약속, 세금을 내면 거리가 안전해진다는 약속. 이 약속들이 하나둘 깨지자, 돈은 영수증이 아니라 벌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성실히 일하고 법을 지키는 시민이, 징벌적인 세금으로 그 대가를 빼앗겨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 논리가 정의를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도움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돕는 방식이 약속을 깨고 있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진짜 정의로운 나눔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투명성이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초 단위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상호성이다. 받는 사람도 청소든, 돌봄이든, 훈련이든 어떤 형태로든 기여해야 한다. 그래야 시혜가 아니라 약속이 된다.
왜 미국의 현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한가
미국의 거버닝 시스템은 처음부터 합의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임스 매디슨은 ‘야망이 야망을 견제하게 하라’고 설계했다. 고의로 비효율적이고 고의로 충돌하게 만든 것이다.
엘리트들의 신사 협정과 끊임없는 성장이 있을 때는 천재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두 전제가 모두 사라진 지금, 견제와 균형은 거부와 마비로 변했다. 합의하면 배신자가 되고, 갈등이 있어야 돈과 표가 되는 경제가 되었다.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사실 미국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관계나 권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계약과 이익으로만 움직인다.
“Show me the contract, What’s in it for me?” 이 두 문장으로 모든 것을 묻는다. 그래서 합의에 10배의 에너지가 든다.
그러나 그 다루기 어려움이 미국을 250년 버티게 한 힘이다.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은 노예로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성실과 준법으로
그래서 답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다.
AI가 약속을 공정하게 관리하게 하라. 장부를 투명하게 하여 누가 기여하고 누가 약속을 어기는지 모두가 보게 하라. 그러면 돈은 다시 약속의 영수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성실과 묵묵한 준법 정신을 지키는 시민들이 보호받고 늘어날 때 미국은 건강해질 것이다. 포용성은 그 다음에 절로 생긴다. 내 삶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남에게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약속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 평범한 진리를 다시 믿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