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연기까지 넘본다… 배우들의 새로운 고민
“AI 배우요? 실험적이죠. 나와 똑같다니 싫고 무섭네요.” ‘AI 배우’의 등장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실제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학습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기술부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배우를 구현하는 방식까지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의 주제인 정체성의 탈취는 최근 AI 기술의 발전과도 어느정도 맞닿아 있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주인공 김부장(소지섭)의 과거를 담은 약 3분 분량의 장면을 AI로 제작해 공개했다. 현재의 소지섭을 기반으로 과거 모습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자가 최근 만난 배우들에게 ‘AI 배우’에 대한 생각을 묻자 돌아온 답변은 대체로 조심스러웠다. AI 기술 자체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 연기가 AI를 통해 재현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과 두려움을 드러냈다.
성큼 다가온 AI 배우… 얼굴·목소리 복제 현실화
‘들쥐’로 만난 설경구는 AI 배우에 대해 “실험적인 것 같다”면서도 “내가 똑같이 나온다는 게 싫고 무섭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전을 단순히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과 별개로, 배우에게 얼굴과 목소리는 단순한 콘텐츠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자산이라는 의미다.
또 ‘아버지의 집밥’으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정진영은 “AI는 정답을 쫓기 때문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을 살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배우가 대본에 적힌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온 이야기다. 같은 대사라도 배우의 경험과 감정, 호흡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고,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표정이나 말투, 작은 실수가 장면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AI 배우를 둘러싼 논쟁에서 핵심은 결국 ‘AI가 인간처럼 보일 수 있는가’가 아니다. 현재의 기술이 얼마나 실제 배우와 비슷한 표정과 목소리를 만들어내는지를 넘어 과연 AI가 인간 배우가 가진 고유한 경험과 감정까지 구현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배우가 연기를 통해 표현하는 감정은 단순히 입력된 데이터의 결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개인이 살아온 경험과 감정,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 상대 배우와 주고받는 호흡 등 수많은 요소가 한 장면 안에 축적된다. 같은 대본을 받아도 배우마다 다른 연기가 나오는 이유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강점을 보인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반복적인 촬영이나 수정 작업을 줄이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기술이다. 특히 광고와 숏폼 콘텐츠처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분야에서는 AI 배우의 활용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앞서의 배우들의 우려는 AI 기술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 오히려 더 직접적인 문제는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 새로운 콘텐츠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배우의 디지털 복제 가능성도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과거에는 배우가 직접 촬영에 참여해야만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콘텐츠에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충분한 영상과 음성 데이터가 있다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효율성과 창작의 경계 우려해야
이 과정에서 배우가 어디까지 동의해야 하는지, 한 번 동의한 이후 활용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추가적인 사용에 대해 별도의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AI 배우의 등장 자체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는 AI가 기획과 편집, 번역, 후반 작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배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AI가 반복적인 작업이나 특정 유형의 연기를 대신할 수는 있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거나 실제 배우가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장면을 구현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의 깊이 등 인간 배우의 강점이 필요한 영역이 여전히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