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에덴을 그리워하지 않아 [김준철 시인의 시가 있는 radioseoul1650.com]

green trees and lake under white clouds and blue sky during daytime
Photo by po se on Unsplash

아담을 벗어난
이브의 몸은
허기진 그리움으로
세상을 향해 자궁을 연다

자궁의 깊은 어둠을 비껴 달이 뜨고
형광빛 이슬을 먹고 자란 뱀의 눈물이
자궁 속에 맺힌다

이브를 찾는 아담의 성욕이
밤마다 괴성의 자위를 하고
어미를 찾지 못한
그의 정액은 벽을 타고 오른다

이브는 다락방에 숨었다

작은메모: 예전에 나는 상당히 오랫동안 시의 순수성에 대해 고민했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것만이 과연 시의 몫인가. 아름답지 않은 것, 외면하고 싶은 것, 우리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는 일 또한 시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시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을 찾고 싶었다. 강요된 아름다움이나 꾸며진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보다 현실 속에서 서서히 부패해가는 우리의 시간과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시에서 아담과 이브는 더 이상 잃어버린 에덴을 그리워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의 인간이면서 동시에 욕망과 결핍, 생명과 성(性), 고독과 단절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이기도 하다. 자궁과 뱀, 정액과 달 같은 태초의 이미지들을
현재의 낯설고 불편한 풍경 속으로 불러낸 것도 그런 이유다.
나는 때때로 시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애써 잊고 살아가는 것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를 통해 잊었던 태초의
존재와 인간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원초적인 욕망과 고독을 한 번쯤 깨워보고 싶었다.

김준철 (treeandmoon2022@gmail.com)
현)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비영리문화예술재단『나무달』대표.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 수상, 쿨투라 해외문화상
수상.
시집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슬픔의 모서리는
뭉뚝하다』, 전자시집 『달고 쓰고 맵고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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