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16도의 벽’도 무너졌다… ‘절주 문화’ 확산에 고육지책?

한국내 대표 주류 회사 3곳이 앞세우고 있는 소주 주력 제품들. 이달 말 출시 예정인 오비맥주의 '찰랑'(왼쪽부터)과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 이미지. 오비맥주·하이트진로·롯데칠성음료 제공

<올해 15.7도 이어 15도 소주까지 등장>
코로나19 이후 ‘음주 감소’ 현상 장기화에
알코올 도수 낮춘 ‘순한 소주’ 전략 가속화
“신규 고객 확보보단 ‘기존 소비층’ 붙잡기”
업계, ‘저도수 소주 마지노선’ 눈치 싸움도

“소주는 그래도 소주 맛이, 쓴맛이 나야지.”

애주가들, 그중에서도 ‘소주파’끼리 자주 주고받았던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어느덧 옛말이 됐다. ’16도의 벽’마저 무너진 소주 알코올 도수를 보면 그렇다. 1980·90년대의 ‘소주=25도’ 공식은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1990년대 말 ’23도’로 내려간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그 이후로도 계속 낮아졌는데, 최근 수년 사이엔 그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특히 올해 소주 도수 인하 양상은 예년과 사뭇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단순히 소비자 입맛에 맞추는 걸 넘어, ‘생존의 절박함’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주류 회사들은 어쩌다 소주 고유의 ‘쓴맛’을 대폭 줄이면서까지 알코올 도수를 내리게 된 걸까. 그리고 소주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순해질’ 수 있을까.

팬데믹 계기로 ‘술 수요’ 줄어들더니…

최근 들어 가장 파격적인 알코올 도수의 소주를 내놓은 곳은 오비맥주다. 국내 소주 시장 진출을 위한 주력 제품으로 이달 말 출시되는 ‘찰랑’의 도수는 15도에 불과하다. 이에 앞서 하이트진로는 6월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낮췄고,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도 이달 1일 같은 수순을 밟았다. 찰랑이 시장에 선을 보이고 나면, 국내 대표 주류 기업 3사 모두 소주 주력 제품군의 도수를 ’15도대’로 조정하는 셈이 된다.

주류 회사들이 앞다퉈 소주 도수를 낮추는 이유는 ‘소비자가 더 이상 과음을 즐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시작된 ‘절주 분위기’는 잠깐 동안 반짝하는 일시적 트렌드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문화로 굳어졌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펜데믹 땐 감염병이 가라앉으면 수요도 다시 회복될 것이란 희망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기대감도 없는 상황”이라는 하소연마저 나온다.

최근 5년간 국내 주류 전체 출고량과 희석식 소주의 출고량. 그래픽=송정근 기자

최근 5년간 국내 주류 전체 출고량과 희석식 소주의 출고량. 그래픽=송정근 기자

실제로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류 전체 출고량은 298만7,726㎘로, 외환 위기 시절인 1998년(292만2,489㎘) 이후 27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2024년(315만1,371㎘), 2023년(323만7,036㎘) 출고량과 비교해도 감소세는 가파르다. 그중 희석식 소주의 작년 출고량 역시 79만2,912㎘로, 전년 대비(약 81만5,712㎘) 2.8% 줄었다.

절주 문화의 확산은 미래 소비를 이끌어야 할 MZ세대(1980년대 초~2010년대 초 출생)에서 두드러진다. 시장조사기관 오픈서베이가 지난달 20~23일, 20~3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개월 내 술을 마셨다’는 응답자 비율은 67.2%로, 2024년에 비해 4.9% 줄어들었다. 월 평균 음용 횟수도 6.40회로, 2024년 대비 0.64회 적었다.

음주 감소의 가장 큰 이유로는 건강(28.6%)과 경제적 부담(27.9%)이 꼽혔다. 반면에 무알코올 주류 경험 비율은 2024년 64.2%에서 올해 77.4%로 늘었다. 음주 빈도와 주량은 줄이면서도, 자신의 취향과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음주 성향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도수 전략?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것”

최근 소주 도수 인하 현상과 관련, 주류 업계 관계자는 “사실 회사 차원에서 수요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저도수 전략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과거엔 고객 연령층을 확대하기 위해 소주 도수를 낮췄다면, 지금은 신규 고객 확보보다는 ‘그나마 남아 있는 소비층이라도 붙잡아 보려는’ 목적에서 저도수 소주를 출시한다는 얘기다. 또 예전엔 ‘한 병 먹을 것, 덜 취하게 해서 두 병 먹게 하자’는 전략도 녹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효과조차 기대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고(高) 현상'(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장기화, 중동 정세 불안 지속 등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게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술자리 자체가 줄면서 유흥시장 프로모션 등 전통적인 판촉 전략이 통하지 않게 된 것도 저도수 소주 열풍을 가속시키고 있다. 이전처럼 현장을 직접 공략하는 판촉보다는, 저도수·제로 슈가 등 ‘건강에 덜 해롭다’는 점을 내세우는 게 수요 확보에 더 도움 된다는 의미다. 롯데칠성음료의 주력 제품 ‘새로’의 경우, 출시 때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저도수(16도)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MZ세대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새로는 2022년 9월 출시 후 4개월여 만에 약 18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듬해엔 연 매출액 1,256억 원을 기록했다. 그 이후 올해까지 단일 브랜드로 매년 1,000억 원대 매출을 유지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소주 도수, 얼마나 내려갈까… “적정선 고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도수 소주의 ‘마지노선’에 대한 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과거엔 ‘소주 도수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청주, 과실주 등과의 경계가 모호해져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다른 주종과 비슷한 수준까지 도수가 내려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컨대 지난 7월 하이트진로는 기존 ‘진로'(15.7도)보다 도수를 4도가량 낮추고 칼로리도 25% 줄인 ‘진로 라이트’를 출시했다. 알코올 도수만 놓고 보면 청주, 과실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될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소주가 가진 상징성, 정체성이 워낙 크고 맛도 다르기 때문에 브랜드 색깔이 흐려질 것이라는 우려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소주 도수를 어느 선까지 내릴지를 두고 주류 업체 간 눈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주 도수는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식으로, 소비자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라며 “주류 회사들도 그 적정선을 찾는 고민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주가 너무 밍밍해지면 거부감을 느끼는 고객층도 분명 있을 터라, ‘적정 도수’의 선에 대해 어느 정도 타협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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