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에서 “이란 지옥 보낼 수도”
몇 시간 뒤 사위 보내 비공개 회담
‘양면 외교’에 혁명수비대는 반발
“지옥으로 몰 것인가”… 평화의 상징 유엔서 노골적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이란을 향해 최후통첩을 쏟아냈다. 그는 “이란을 재건해 위대한 국가로 만들 합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신속히 전멸시켜 지옥으로 몰아넣을 것인가.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위협했다. 다자주의와 국제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창설된 유엔 무대에서 세계 초강대국의 정상이 회원국의 ‘소멸’을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현장에 있던 이란과 쿠바 대표단은 모욕과 위협에 항의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연설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180도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 도중 취재진에게 “(이란과의 회담이) 아주 잘 됐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진 회담이었다”며 양국 간 비공개 접촉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미국 측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백악관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가 나섰고, 상대는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생산적인 회담이었고 곧 추가 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합의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유리하다”고 협상 분위기를 띄웠다.
바다·하늘길 막은 뒤 양자택일 제시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취임 후 8개의 전쟁을 끝냈다”며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칭했다. 그러나 그가 평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철저히 힘으로 굴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기습 체포해 뉴욕 구치소에 가둔 군사작전을 언급하면서는 “승자에게 전리품이 돌아간다”는 제국주의식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란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경제 제재는 이어졌다. 미국은 미 해군을 동원한 호르무즈해협 통제에 이어, 23일부터 이란 항공업계 전체를 겨냥한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전격 발효했다. 이 여파로 이라크와 오만, 조지아 등이 이란발 항공기 운항을 전면 취소하며 이란의 하늘길마저 사실상 봉쇄됐다. 양자택일을 들이미는 벼랑 끝 전술이다.
이란 협상파 ‘종전 조건’ 내밀고… 강경파는 ‘반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미국을 방문한 이란의 온건·실용파는 일단 대화의 문을 두드렸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함께 뉴욕에 온 아라그치 외무장관 등 협상단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들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해제와 미국 내 동결 자산 반환을 종전의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복수의 이란 매체가 전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란을 장악하고 있는 강경파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란군 총참모부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등 군부 강경파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 직후 공동성명을 내고 “미국의 적대적 위협은 내부 정치 선전용에 불과하다”며 강력한 군사 보복을 천명했다.
미국 내 비판 목소리도 상당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유엔총회 무대에서 한 국가의 전멸을 협박하는 것은 유엔 창설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행위”라고 지적했고, 앤디 김 (민주·뉴저지)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앞에서 스스로를 모욕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 김현빈 특파원 (hbkim@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