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가 아웃렛 부활 이끈다… ‘선제 할인’으로 아마존에 맞불

[로이터]

지난달 24일 수도 워싱턴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거리(약 56㎞)인 버지니아주(州) 북부 라우든카운티의 ‘리스버그 프리미엄 아웃렛’. 아르마니, 보스, 코치, 토리버치 등 유명 브랜드 100여 개의 상설 할인 판매점이 모인 곳이다. 금요일인 이날은 사실상 미국 여름 휴가철의 시작이었다. 대표적 연방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현충일·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와 독립기념일(7월 4일) 사이 기간은 ‘서머 드라이빙 시즌’으로 통한다. 그래서 정부가 휘발유 가격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정오 전에 도착했는데도 진입로에 차가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 이곳 상점이 이달 말까지 할인 폭을 더 키워 판촉을 진행한다. 세일 기간은 값싼 상품이 매대에 막 나온 첫날이 가장 붐비게 마련이다. 일을 파하고 본격 연휴에 들어가는 오후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올 참이었다. 남성 의류 전문인 보스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손님이 많아졌다. 내일은 더 많을 것 같다.” 계산대가 붐볐고, 점원뿐 아니라 매니저도 바빴다. 옷을 고르는 고객도 챙겨야 했다. ‘물가가 뛰어 아웃렛 인기가 더 좋아진 것 아니냐’고 넘겨짚자 매니저가 동의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물가가 2021년보다 15% 올랐고, 이른바 명품을 포함한 고급 브랜드 제품 가격 상승 폭은 훨씬 더 크다. 매니저는 “식료품까지 전부 값이 올라 나도 세일만 기다리는 형편”이라며 “휴무일인 내일은 쇼핑객이 돼 보려 한다”고 말했다. “상점은 상점대로 직원 판매 인센티브까지 깎아 가며 값을 내리고 호객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공격적 프로모션

프로모션의 정점은 이달 두 번째 주말인 8, 9일이다. ‘전국 아웃렛 쇼핑 데이’ 홍보물이 가로등마다 걸렸다. 미국 최대 쇼핑몰 소유 기업인 사이먼프로퍼티그룹 산하 쇼핑 아웃렛 90여 곳이 행사에 참여한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최고인 상품이 연중 가장 많은 기간이라는 게 주최 측 소개다. 행사는 지역 축제처럼 치러진다. 푸드 트럭이 줄줄이 오고 현지 상인이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가 설치된다. 사진 찍는 장소인 ‘셀피 스테이션’도 마련된다. 라이브 공연과 야외 게임, 페이스 페인팅도 즐길 수 있다. 이 대규모 프로모션 이벤트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막바지인 2022년 6월 11, 12일 처음 열린 뒤 올해 3년차다.

돌아보면 199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쇼핑몰이 내리막을 탄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부실 관리, 구식 마케팅, 무분별한 난개발로 자멸 조짐이 보이던 시내 쇼핑센터를 1990년대 급속히 세를 불린 월마트, 타깃 등 대형 소매 유통업체가 차츰 대체해 갔다. 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몰의 성장세는 소매업에 치명타였다. 편리를 찾아 고객들이 떠났다. 아예 매장이 문을 닫게 만든 팬데믹은 교외 아웃렛마저 벼랑 끝에 세웠다. 2020년 닥친 상황이었다.

판매 시즌이 끝난 뒤 팔고 남은 재고를 털어 내는 게 원래 아웃렛 세일의 용도다. 그러나 사이먼프로퍼티그룹의 데이비드 사이먼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 ‘온라인 유통 공룡’ 아마존이 2015년부터 매년 7월 중순 이틀 일정으로 이어 오고 있는 멤버십 회원 대상 대규모 할인 행사 ‘프라임 데이’를 모델로 삼았는데, 시기를 한 달 앞으로 잡았다. 경쟁 상대 온라인 쇼핑몰의 공세에 맞불을 놓되 기선을 제압한다는 전략이었다. 2019년 초 한창 구체화하던 이 구상을 펜데믹이 망쳤다.

그러나 위기 뒤에 기회가 찾아왔다. 인플레이션(고물가)이었다. 사이먼 회장은 2022년 6월 미국 CNBC방송 인터뷰에서 “저소득층 소비자가 압박을 받고 있다”며 “할인 이벤트를 출범시키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안전망 용도로 정부가 잔뜩 푼 돈이 소비 수요를 부풀렸고, 그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통에 에너지 가격마저 급등했다. 가격이 덜 오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떨어뜨려야 했다. 할인을 기다리는 대기 고객이 쌓여 갔다.

명품 브랜드도 눈독

고가 상품을 취급하는 명품 브랜드들은 아웃렛 입점에 시큰둥했다. 에르메스, 샤넬 같은 초고가 브랜드는 아웃렛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프라다나 구치는 적은 수의 아웃렛 매장 수를 철저히 관리하는 편을 택했다.

‘명품족’한테는 인플레이션 타격이 제한적일 터였다. 하지만 완전히 영향권 밖일 수는 없었다. 미국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아웃렛을 통한 명품 매출이 35% 늘어 500억 달러 규모가 됐다. 아직 3,870억 달러 크기 시장의 12.9% 수준에 불과하지만, 성장 폭은 정가 매장 및 온라인 판매분보다 훨씬 가팔랐다.

미래를 내다봤을 때도 아웃렛 소비자층은 매력적이다. 미국 빅데이터 분석기관 플레이서닷에이에 따르면 아웃렛이 유인하는 고객 중에는 갓 정착한 청년 가족이 상대적으로 많다. 7만4,000달러 정도인 평균 연 소득은 아직 중산층 하한인 7만5,000달러(올 2월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아직 젊기 때문에 전도유망하다는 게 업체 분석이다. 예비 고소득층인 셈이다.

특히 Z세대(18~26세)는 소비 습관이 형성될 즈음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을 거친 세대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만큼 품질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합리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설문조사 결과다. 이들에게 아웃렛은 최고 브랜드 제품을 최저 가격에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며, 서비스 수준만 잘 관리한다면 명품 브랜드가 오랫동안 여정을 함께할 단골 고객을 아웃렛에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분석했다.

다시 성장 가도로

우호적 여건은 물가뿐 아니다. 팬데믹은 오프라인 쇼핑 업계 전체에 전화위복이 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8월 CNN방송은 Z세대 소비자 3분의 2가 특정 제품이 아닌 사회적 측면을 위해 쇼핑몰에 간다고 답했다는 소매업 단체 국제쇼핑센터협회(ICSC)의 조사 결과를 전했다. 그러면서 “2020년 (코로나19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한) 매장 폐쇄는 (온라인 쇼핑에 치여) 고사 직전인 쇼핑몰의 관에 마지막 못을 박을 것이라는 예측을 불렀지만, 팬데믹 이후 사회가 공동체 공간을 향한 갈망을 확인했다”고 해석했다.

38개 미국 내 프리미엄 아웃렛을 보유한 탠저아웃렛의 스티븐 얄로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포브스에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며 아웃렛 매장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팬데믹 전에는 매장만 바쁘게 둘러본 뒤 떠나는 ‘파워 쇼핑 경험’ 추구 고객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 커뮤니티 공간에 느긋하게 머물며 여유를 즐기려는 고객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웃렛이 대개 도심과 멀어 작심하고 가야 하는 곳이다 보니 가족 단위 오락거리를 제공할 필요가 생겼다”고 그는 덧붙였다.

작년 10월 테네시주 내슈빌에 새로 문을 연 탠저 아웃렛에는 얄로프 CEO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의류 매장 비율을 98%가량에서 92% 안팎까지 줄이고, 수제버거 브랜드 쉐이크쉑 등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지역민이 많이 찾는 맥주집, 커피숍을 유치했다. 공연장과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고, 요리 시연이나 운동 강습을 열기도 한다. 역시 내슈빌에 올해 개장을 목표로 비슷한 콘셉트의 아웃렛을 짓고 있는 사이먼은 기존 매장 개축이나 확장에도 투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쇼핑센터도 부활

부활하는 것은 교외 아웃렛만이 아니다. 1월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올 1분기 전미 쇼핑센터 공실률이 작년 2분기부터 2007년 집계 이래 최저 수준(5.4%)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0년 말과 2021년 초 7%대까지 치솟았던 수치다.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는 “전자상거래와 오프라인 소매업이 서로 보완하고 있다”며 오프라인 매장이 브랜드의 온라인 매출을 늘린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탠저의 얄로프 CEO는 CNN에 “온라인으로만 물건을 판매하던 ‘디지털 네이티브 브랜드’가 고객이 제품을 테스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아웃렛 매장을 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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