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위기’ 삼성, 7년여만에 경영진단 부활…내부 쇄신역할 주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저승사자’ 미전실 핵심 인사 요직에…컨트롤타워 복원 시동

메모리·파운드리 경쟁력 강화 시동…인재풀 부족 지적도

삼성이 최근 불거진 복합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연말 인사에서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 기능 부활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울러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인적 쇄신과 세대교체를 꾀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미래 신기술 분야 인재를 발탁하는 등 근원적 경쟁력 회복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췄다.

인사에 대한 재계 안팎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삼성이 이번 인사와 향후 조직개편을 계기로 그룹 전반에 만연한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미전실’ 부활 수순?…신임 경영진단실장에 최윤호

1일(한국시간) 재계에 따르면 삼성의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삼성글로벌리서치 내에 신설된 경영진단실이다.

경영진단실은 관계사 경영 진단과 컨설팅 기능을 하는 사장급 조직으로, 삼성전자 미래전략실과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경영지원실장 등을 거친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이끌게 된다.

삼성은 각 관계사의 요청에 따라 전후방 업종 전망과 수요처 경기 동향 등을 컨설팅해 관계사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과거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이 수행했던 기능이 2017년 2월 미전실 해체 이후 약 7년9개월 만에 부활했다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전략, 기획 등과 함께 미전실의 핵심 기능 중 하나였던 경영진단팀은 미전실 해체 전까지 그룹 전반의 경영 진단과 각 관계사의 감사 및 경영 컨설팅 등의 역할을 수행해 그룹 내 ‘저승사자’로 불렸다.

국정농단 사태로 미전실이 해체한 이후로는 그룹 차원의 경영 진단 기능은 사실상 없어졌고, 각 계열사에서 자체 감사와 경영진단을 하고 있으나 위상은 예전만 못한 상태다. 2017년 11월 출범한 사업지원TF에도 경영 진단 기능은 없다는 것이 삼성의 설명이다.

경영진단실 신설을 두고 재계에서는 향후 미전실과 같은 그룹 컨트롤타워를 복원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 사장뿐 아니라 과거 미전실 핵심 인사들이 이번 인사에서 주요 보직에 재배치된 것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더한다.

정현호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에는 미전실 경영진단팀장,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등을 지낸 박학규 사장을 이동시켜 조직을 한층 강화했다. 역시 미전실 출신인 ‘전략통’ 김용관 사장은 그룹 위기의 진원인 반도체 부문에 신설된 경영전략담당을 맡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 전반의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는 만큼 이를 불식하고자 과거 미전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을 핵심 보직에 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삼성의 주력 사업 경쟁력이 약화한 원인으로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고 각 관계사 최고경영자(CEO)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전실은 1959년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 시절 회장 비서실에서 출발해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구조본), 2006년 전략기획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명칭을 바꿔가며 6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했다가 2017년 2월 해체됐다.

전 계열사의 인수·합병(M&A), 경영계획 수립·집행, 인사, 감사 등 그룹 계열사 경영 전반을 관리·통제하는 역할을 하며 ‘관리의 삼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였던 삼성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으로는 법적 실체가 없는 조직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총수를 위한 각종 불법 행위를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조직개편 등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인사만 놓고 보면 삼성이 컨트롤타워 복원을 위해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은 준감위 연간 보고서에서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반도체 쇄신·’기술통’ 전진 배치…혁신 의지·인재풀 부족 비판도

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그룹 복합 위기의 근원으로 지적된 반도체 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5월 ‘구원투수’로 투입된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이 7년 만에 메모리사업부장을 다시 맡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메모리사업부를 부회장급 조직으로 격상시켜 고대역폭 메모리(HBM) 경쟁력을 키우는 등 메모리 1위 위상을 회복한다는 취지다.

수조원의 적자를 내며 삼성전자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에는 ‘미국통’인 한진만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과 ‘기술통’인 남석우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을 배치, 고객 수주와 기술력 향상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한다.

여기에 기획·전략 전문가인 김용관 경영전략담당을 투입, 적재적소에 인력과 재원을 투자하며 기술 경쟁력 복원을 뒷받침한다는 방침이다.

삼성SDI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도 ‘기술통’을 전진 배치하며 기술력 회복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29일 단행한 삼성전자 임원 인사에서는 승진 규모는 예년보다 줄었지만, AI와 6G, 차세대 반도체 등 신기술 분야 인재가 다수 승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연말 인사를 두고 여전히 혁신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 안팎의 기대만큼 인적 쇄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실망감도 엿보인다.

그간 ‘삼무원'(삼성+공무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의 관료화가 문제로 지적됐으나, 정작 관료화 원인 중 하나로 꼽힌 사업지원TF의 역할이 더 강화되고 미전실 출신이 요직으로 재등판한 탓이다.

재계 관계자는 “‘올드보이’의 귀환, 미전실 출신 인사들의 ‘회전문 인사’ 등을 보면 삼성전자의 인재풀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고 말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도 “부사장급 이하 임원은 조직 슬림화를 통한 경영 효율성, 기술 인재 전면 배치 등으로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지만, 이와 달리 사장단 인사에서 인재풀이 적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대대적 쇄신과 혁신이 어느 정도로 이뤄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가 향후 1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먹거리 아이템을 발굴하겠다며 신설한 미래사업기획단이 1년 만에 3번째 수장을 맞이하게 된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길게 내다보고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조직의 수장이 자주 바뀌는 모습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며 “출범 당시 밝힌 것과 다르게 미래 먹거리 발굴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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