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윌슨에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이 구축해 온 글로벌리즘의 토대를 뒤흔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닌, 더 깊은 철학적,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먼저, 트럼프의 반글로벌리즘은 전후 국제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서 출발한다. 루스벨트가 구축하고 트루먼이 강화한 브레튼우즈 체제, NATO, 그리고 다자간 무역 체제가 더 이상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특히 클린턴 시대의 NAFTA와 오바마 시대의 TPP로 대표되는 자유무역 확대 정책이 미국의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입장은 단순한 보호무역주의를 넘어선다. 그의 “딥스테이트” 비판은 국제질서를 운영하는 관료제와 전문가 집단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담고 있다. 케네디 이후 미국 행정부가 추진해 온 전문가 중심의 정책 결정 과정을 “국민의 의지를 배반하는 엘리트주의”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러한 접근은 몇 가지 중요한 맹점을 드러낸다.

첫째, 글로벌리즘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를 과소평가한다. 국제무역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상품을 제공했고, 미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특히 서비스 산업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은 세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둘째,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간과한다. 기후변화, 테러리즘, 전염병과 같은 초국가적 문제들은 일국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오바마가 추진한 파리기후협정 탈퇴는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었다.

셋째, “딥스테이트” 비판은 정부의 전문성과 제도적 연속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윌슨 이후 미국이 구축해 온 전문 관료제는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기제였다.

그렇다면 트럼프 현상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글로벌리즘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클린턴과 오바마 시대의 세계화는 제조업 노동자들과 같은 특정 계층에게 상당한 고통을 안겼다. 이들의 불만이 트럼프 현상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둘째, 국제협력과 국가이익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무조건적인 글로벌리즘도, 극단적인 자국우선주의도 해답이 될 수 없다. 루스벨트와 트루먼이 그러했듯이, 국제협력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증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 전문성과 민주성의 조화다. “딥스테이트” 논란은 전문가 집단과 일반 시민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케네디 시대의 엘리트주의적 정책결정과 트럼프식의 포퓰리즘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반글로벌리즘은 전후 국제질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 제기였다. 그러나 그의 해법은 또 다른 극단이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세계화의 혜택을 더 공평하게 분배하고, 국제협력과 국가이익의 균형을 찾으며, 전문성과 민주성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윌슨에서 오바마에 이르는 글로벌리즘의 전통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21세기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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