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평소 하는 말이 있다. “권력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핏줄이 원수”라고. 우리 정치사에서 권력자 주변에서 실세였던 이들의 뒷모습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던 만큼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 역대 대통령 잔혹사 배경엔 측근 못지않게 친인척 문제가 약한 고리로 작용했다. 군사독재 시절을 제외하더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인 박철언은 슬롯머신 사건으로 1년 6개월을 복역했다. ‘소통령’으로 불렸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과 3남 김홍걸은 뇌물 수수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친형(노건평·이상득)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 미혼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게는 돌봐야 할 가족도,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다”며 국민 행복만을 위한 정치를 약속했다. 실제 재임 중 형제들과 거리를 뒀지만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 등 측근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당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부른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촉발시킨 배경에 부인 김건희 리스크가 없다고 볼 수 없다. 측근 및 가족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이 대통령에게 수모를 안기는 것을 넘어 정권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나란히 대통령 배우자 등 친인척 비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특감)을 취임 즉시 임명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김건희 리스크를 방치해 민심 이반을 자초한 윤석열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9월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물러난 후 문재인·윤석열 정부는 이 자리를 공석으로 뒀다. 문 전 대통령이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선제적 관리에 나섰다면 퇴임 후 딸과 관련한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잔혹사를 반복할 건가. 대통령 친인척 관리는 자신을 선출해 준 국민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김회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