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는 명령에서 오지 않는다. 신뢰에서 온다.”
– 어느 헌법학자의 말처럼, 지금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법의 이름으로 작동하는 ‘신뢰’다.
4일째 이어지는 엘에이 시내의 시위와 소요. 도심 곳곳에서 연방요원이 나타나고, 시민은 거리에서 최루가스를 마신다.
진보 매체는 “과잉 진압”을 외치고, 보수 매체는 “무법천지”를 경고한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혼란 속에서 서 있는 보통 시민의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지금 이 땅의 진짜 권위는 누구입니까? 연방입니까, 지방입니까?”
생추어리 도시 vs 연방법 집행
엘에이는 스스로를 ‘생추어리 도시’라 선언했다. 시정부는 이민자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연방 이민 단속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일부 시민의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반대하는 시민들도 많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이를 헌법 제6조, ‘우선권 조항(Supremacy Clause)’을 근거로 “연방법 집행을 방해하는 위헌 행위”라 규정했다.
이에 따라 홈랜드 시큐리티(DHS)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직접 시내에 등장했고, 지금의 충돌은 그 정점이다.
시민의 혼란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념에 따라 해석되는 언론 보도는 현실을 더 왜곡시키고 있다. 한쪽에선 “불법을 막기 위한 질서 유지”라며 연방의 투입을 정당화하고,
또 다른 쪽에선 “시민에 대한 폭력”이라며 저항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중간에 낀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경찰입니까? 연방요원입니까? 내 안전은 누가 책임집니까?”
그리고 이 물음에 누구도 선뜻 대답해주지 않는다.
연방주의의 딜레마
미국은 연방제 국가다. 즉, 워싱턴 DC의 법과 LA 시청의 조례가 함께 살아 숨쉬는 구조다. 문제는 이 두 법이 충돌할 때 누가 우선인가를 놓고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연방은 “우리가 헌법상 주권을 갖는다”고 외친다.
- 지방은 “우리는 주민을 대변한다”고 맞선다.
헌법 제10조는 주와 시민에게 명시되지 않은 권한의 보장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연방 권한을 막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법원 판례와 정권의 철학에 따라 진실이 변하는 구조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가
엘에이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지금 이 도시는, ‘자치와 중앙’의 싸움터, ‘현장과 원칙’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민, 치안, 주권, 표현의 자유가 부딪히는 이 장면은 마치 오래된 헌법 책이 피를 흘리는 듯한 풍경이다. 시민들은 “왜 이 싸움의 대가를 우리가 치러야 합니까?” 라고 반문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아직 없다.
연방도, 시정부도, 언론도 책임 있는 말 한마디를 아낀다. 지금 필요한 건 이념이 아니라 제도적 명확성, 그리고 시민의 안전과 신뢰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