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한미동맹 약화땐 中 도발 수위 높일 것…주한미군 논의 시급”

[새 정부에 바란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서해구조물 문제 심각…북중러 ‘기회주의적 공격’ 가능성

주한미군 감축되더라도 구체적 대북 억지력은 보장을

비관세장벽 전략적 양보로 트럼프 관세 유예 끌어내야

한미 동맹이 약해지면 중국이 서해에서 우리 영토 주권을 침해하는 등의 도발을 오히려 더 강화할 것이라는 경고가 미국 워싱턴DC 내 대표적인 ‘한국통’으로부터 나왔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미 정상 간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조언도 눈길을 끈다. 북한과 중국·러시아가 서방의 대응 태세가 느슨해진 때를 틈타 도발하는 ‘기회주의적 공격’ 시나리오가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가운데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해 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10일(현지 시간) 서울경제신문과 화상 인터뷰를 갖고 “중국이 서해에서 한국의 영해를 침범하는 구조물을 건설하고 있고 항공모함까지 동원해 군사 훈련을 벌였다”며 “한국 내에서 나오는 가장 큰 오판은 중국의 이런 행태가 단순히 한미가 밀착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차 석좌는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면 중국이 이런 활동을 덜 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라며 “한미 동맹이 약해지면 중국이 공세적 활동을 훨씬 더 많이,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과거 미국이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지가 명확하지 않았을 때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한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그는 “서해 구조물 문제는 매우 심각하며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사용한 동일한 전술을 한국에도 적용하고 있다”며 “한국의 새 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2013년부터 남중국해에 여러 인공 섬을 건설한 후 이를 근거로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며 필리핀·베트남 등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중국은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지난달에는 최신예 항공모함인 푸젠함을 동원해 군사훈련까지 벌여 서해를 중국 앞바다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500명의 주한미군을 괌 등으로 이전 배치하는 방안이 미 국방부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하자 국방부가 공식 부인했지만 이후 익명의 당국자들은 해당 주제가 논의 테이블에 올라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차 석좌도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할 수 있다며 이를 두고 양국 정상이 조속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한미군이 감축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방어 능력이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동반돼야 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통해 북한이 ‘남한의 억지력은 약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미국이 한국과 상의 없이 주한미군을 감축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속단할 수는 없다고 봤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미국은 한국과 협의 없이 주한미군을 조정했다고 소개했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상의 없이 1개 사단을 철수시켰고 이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할 것이라고 언급했을 때도 한미 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 석좌는 “현재의 한미 관계는 과거와 매우 다르다”며 “미국은 한국의 조선업과 반도체, 액화천연가스(LNG) 분야에서 협력해야 하고 우주 및 방위산업 분야의 협력도 진행 중”이라고 짚었다. 과거보다 여러 방면에서 끈끈한 관계가 구축됐다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외교 노선에 대해서도 차 석좌는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통화한 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통화하는 등 한미일 협력에 방점을 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워싱턴 조야에서는 이 대통령이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입장을 확실히 바꾼 것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차 석좌는 “한국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고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매우 불확실한 안보 환경하에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확신한다”고 힘줘 말했다. 차 석좌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기회주의적 공격 시나리오’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며 “가령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이 이뤄지고 한국에서 주한미군이 감축되면 북한이 기회를 포착해 한국에 도발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그 기회를 틈타 발트 국가들을 공격할 기회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은 긴밀히 연결돼 있고 단순히 한미 양자 동맹 관계로만 보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한미일이 긴밀히 협력해 관련 정보를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이 추진 중인 전 세계 미군 재편 과정에서도 한미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의 병력 감축이 실행될 경우 한미일이 방어 및 억제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며 이는 한미 양자 간 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역시 한미일 협력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만큼 협력 강화를 위한 토양은 마련됐다는 견해가 많다. 차 석좌는 “비록 일본 내에서 진보적인 한국의 새 정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이 많지만 이시바 총리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한미일 협력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서 논의되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관련해서도 단순히 한반도에서 이동하는 수준을 넘어 대중 전략에서도 복잡성을 더할 것이라는 게 차 석좌의 진단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북한의 위협 대응’에서 ‘중국 견제’로 확장하는 ‘전략적 유연성’ 정책을 펴고 한국이 이에 동조할 경우 중국의 반발에 직면하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정책을 거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차 석좌는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그는 “한국이 북러 밀착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며 “이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러시아가 북한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북한이 러시아가 너무 독단적이라고 느끼는 경우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춘다면 러시아는 당장 북한으로부터의 탄약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미래의 전쟁에서 더 많은 탄약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전이 끝나도 러시아는 북한을 중요한 군사 파트너로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 석좌는 관세 문제에 대한 대응 전략에 대해서도 견해를 제시했다.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상호관세 유예 기한(7월 8일까지)이 임박한 만큼 이 대통령은 하루 빨리 트럼프 대통령과 관세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열흘이나 2주 후 각국에 미국이 임의로 정한 관세율을 통보할 것이라는 취지로 협상 상대국을 압박하며 “유예 기한을 연장할 용의가 있지만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차 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유예 기한의 단순 추가 연장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합의가 필요하다”며 “한국으로서는 비관세장벽을 낮추는 것을 조건으로 3개월을 추가 연장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최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가 단순히 ‘한국의 대선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관세 유예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일정 수준의 양보를 해야 합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차 석좌는 “하지만 한국에도 분명한 기회 요인이 있다”며 “특히 조선업, 에너지 공급망 등의 분야에서 기회가 있으며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간 미국의 선박 건조를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은 미 정재계에서 금기시되던 주제였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의회는 동맹에 도움을 구하는 관련 법안까지 발의했다”며 “조선업은 한미 양국에 매우 명확하게 유익한 사안이며 따라서 한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15일부터 3일간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 트럼프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차 석좌는 “G7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관세 문제로 화가 나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한미 회담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마뜩치 않아하는 유럽 정상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미국에 우호적인 손을 내미는 한국 정상과 만나면 생각보다 좋은 첫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차 석좌는 “다자회의에서의 양자 회담은 관세, 방위비 분담금 협정 등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에는 너무 짧은 회담인 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기에는 충분한 자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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