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데일 청취자 남상득
요즘 LA 전역을 뒤흔드는 반이민 시위를 지켜보며, 한 가지 질문이 자주 제기된다.
“왜 아시안계는 시위에 안 나오냐”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다. 아시안계는 거리엔 없지만, 분노는 우리 안에 깊이 살아 있다.
나는 미국에 온 지 32년이 되었다. 처음 입국할 때 F-1 비자를 받기 위해 몇 개월간 서류를 준비했다.
한국의 가족으로부터 재정 보증을 받아야 했고, 면접에서 묻는 사소한 질문 하나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시엔 그것이 미국에 들어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비자는 한 줄기 희망이었고, 법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 후 우리는 학비를 벌기 위해 새벽을 걷고, 운전대를 잡았으며,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시민권을 취득했다. 가족을 초청하자,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매달 한국 신문에 실리는 이민 순위표를 들여다보며 “이번 달에는 몇 칸이나 전진했을까”를 계산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멕시코와 중남미 출신 불법 체류자들은 시위를 벌이며, “우리는 워킹 패밀리다, 아이들이 있다”고 외친다.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묻고 싶다.
우리도 일했고, 우리도 아이를 키웠고, 우리도 가족을 품고자 기다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침묵을 강요받는가?
현재 LA 한인타운 일부 상가 앞에는 불법으로 설치된 야외 노점상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그 상가에는 합법 임대계약을 맺은 한인 상인들과 건물주가 있다.
그들은 시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LAPD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시청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의회가 라틴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 당국이 이 불법 노점상들에 ‘합법 면허’를 싸게 발급해주기까지 했다.
결국 법을 지킨 자가 법의 피해자가 되고, 무단 점거자가 합법적 지위를 갖게 된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이건 ‘인종’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다수의 독재’에 대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숫자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가 무너진 순간, 그것은 다수의 횡포가 만든 연성 독재일 뿐이다.
많은 한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정책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말하는 “법의 회복, 질서의 강화”는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현실의 언어로 다가온다.
우리는 분노하지만, 불태우지 않는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시끄럽지 않다.
그러나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낸 30년의 삶과 땀을, 이 도시와 이 나라가 다시 바라보게 만들어야 한다.
한인 커뮤니티는 거리에서 보이지 않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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