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계 도시의 피로감과 분열..
엘에이를 걷다 보면, 이 도시가 여전히 ‘다양성의 상징’이라 믿고 싶어진다. 수십 개의 언어가 들리고, 거리마다 다른 문화가 피어난다.
하지만 그 다채로움 속에 웅크린 긴장과 피로를 읽어내는 사람은 드물다.
LA는 이제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백인 주류 사회 속의 소수자’라는 서사를 담지 않는다.
이미 히스패닉 인구가 과반을 넘어섰고, 남부의 흑인 커뮤니티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이민자 확장으로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언젠가부터 ‘소수자 간 연대’라는 말은 현실과 점점 멀어졌고, ‘소수자 간 경쟁’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서열 없는 평등에 대한 믿음이었다.
복지, 주택, 시정부 지원, 정치적 대표성… 이 모든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서, 커뮤니티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몫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서로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흑인 커뮤니티는 “우리가 먼저 이 도시를 지켰는데 왜 이제는 밀려야 하느냐”고 말한다.
히스패닉 커뮤니티는 “이제 우리가 중심”이라며 목소리를 키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아시안들은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로이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정작 아시안 커뮤니티는, 조용히 일하고 법을 지키며, 아무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오히려 존재를 지우는 결과를 낳았다.
백인 사회에서는 여전히 ‘영원한 외부인’이고, 흑인 커뮤니티에서는 ‘침묵하는 특권층’이라 의심받는다.
히스패닉 커뮤니티에겐 경쟁자이자 무표정한 중산층으로 비춰진다.
그 어디에도 편히 뿌리내리지 못한 채, 이민 1세대는 침묵하고, 2세대는 정체성 혼란 속에 분투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는 건 정치다. 정치권은 연대보다 분열을 통해 표를 얻는다.
언론은 ‘소수자 간 충돌’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소비한다. 그 결과, 다문화의 도시였던 LA는 지금, 감정의 피로와 적개심이 누적된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가장 슬픈 건, 이제 이 도시에서 누구도 완전히 ‘피해자’도, 완전히 ‘가해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억울하고, 모두가 지치고, 모두가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벽을 쌓는다.
그 속에서 연대는 꿈이 되고, 이해는 사치가 된다.
엘에이는 누구의 도시인가?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만 확실한 건, 이 도시가 서로를 밀어내는 방식으로는 결코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다문화 도시란, 혜택의 분배가 아니라 존재의 존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다시 그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이, 그 물음을 진지하게 던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