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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민음사와 ’40년 동반항해’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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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계약해지…삼국지 등 기존작품 판권도 새 출판사로 옮길 듯
‘둔주곡 1980’ 바탕 둔 장편소설 연말 출간 계획…”제목도 바뀔 가능성 커”

소설가 이문열(71)이 출판그룹 ‘민음사’와 40년간 기나긴 동반자 관계를 마무리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

1979년 ‘사람의 아들’을 필두로 국내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와 최정상 단행본 출판사가 만들어낸 하모니와 경제적 시너지를 이제 더 볼 수 없게 됐다.

특히 국내 평역 소설 사상 최고의 스테디셀러인 ‘삼국지’를 비롯해 장편 ‘젊은 날의 초상’, 대하소설 ‘변경’ 등 수많은 기존 히트작 판권도 모두 새로 계약하는 출판사로 옮겨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열 작가는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 4월 민음사와 계약을 해지했다”면서 “앞으로 쓰는 작품은 새 출판사에서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낸 작품의 저작권도 새 출판사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보도진과 이야기하는 이문열 작가

보도진과 이야기하는 이문열 작가 소설가 이문열 작가가 8일 오전 경기도 이천 문학사숙 부악문원에서 취재진과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이 작가는 현재 계약 체결을 교섭 중인 출판사 명칭은 법률과 도의적 문제 등으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아직 새 출판사와 계약이 완료하지 않아서 이름을 대기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함께 한 민음사와 결별하는 이유에 대해 “뭐가 조금 안 맞아서 헤어지게 됐을 뿐 불화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어 “오히려 너무 오래 있었다. 떠들 일은 아니다”라며 “사실 우리나라에서 나처럼 한 출판사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역사가 매우 드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가와 민음사는 사실 함께 성장한 인생 동반자 같은 관계이자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발전한 모범 사례다.

민음사 창업주 고 박맹호 전 회장

민음사 창업주 고 박맹호 전 회장

문학도였던 고(故) 박맹호 전 회장이 서른 두살이던 1966년 5월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 문을 연 민음사와 신예 작가였던 이문열은 1979년 의기투합해 소설집 ‘사람의 아들’을 펴내며 일대 전기를 맞는다.

사실상 프로 소설가 데뷔 첫해부터 명성을 얻은 이 작가는 ‘그해 겨울'(1980), ‘어둠의 그늘'(1981), ‘젊은 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레테의 연가'(1983), ‘영웅시대'(1984), ‘구로 아리랑'(1987), ‘익명의 섬'(1988),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8),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0), ‘어둠의 그늘'(1991), ‘변경'(1994)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내며 민음사와 함께 한국 문단과 소설 시장을 좌우하는 거인으로 떠오른다.

우리 출판 시장 통계가 정확하지 않은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그의 소설은 합쳐서 약 3천만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평역 삼국지는 1천900만부 가까이 판매됐다.

오늘의작가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21세기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며 대중성뿐 아니라 문학성과 작가정신도 인정받았다.

‘보수’를 자처하며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고희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민음사 역시 이 작가와 함께 고속성장을 거듭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단행본 출판사로 자리 잡았다. 5천종이 넘는 책을 출간했고, 사이언스북스, 비룡소, 황금가지, 등 9개 자회사를 거느린 출판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작가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원고지 3천매 분량의 신작 장편 소설을 오는 연말께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월간 신동아에 연재하다 지난해 중반 그만둔 ‘둔주곡(遁走曲) 80년대’에 더 살을 붙여서 상·하 2권 분량으로 낼 계획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작가는 “80년대 이야기를 쓰던 연재소설이 1천500매쯤 쌓였는데, 그만큼 분량을 더 써야 할 것 같다”면서 “3천매 정도로 할 생각인데 제목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드니 마음이 일정치 않고 오락가락 집중을 잘 못 한다”면서 “집중만 하면 연말에 낸다는 계획이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신작 소설에서 선악 구분의 모호성과 위험성, 선(善)을 가장한 폭력, 이념적 잣대를 통한 편 가르기, 역사 해석의 작위성 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기저에 깔고 이야기를 풀어갈 것을 시사했다.

그는 신작에서 독자에 던지려는 메시지를 묻자 “우리 시대에 미묘하게 떨떠름하고 마뜩잖은 부분이 있다”면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상하게 적폐, 과거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신과 해석을 바꾸고 있다. 소설이 시대와 연관된 것이니 아무래도 이런 것과 관련 있게 된다”고 답했다.

“시대의 이름을 마음대로 짓는다든지, 시대의 해석을 전혀 이전과 다르게 한다면 난처하죠. 자꾸 우리끼리 시대를 해석하는 버릇이 있는데, 틀이 바뀌거나 룰이 이상해지면 조금 그렇지 않나요. 일관성 없고 표리부동한 말이 반복되면 그 시대를 규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법률적 소멸시효가 왔다 갔다 하고 법적 불안정성이 세계를 지배하면 믿을 게 없어지는 거예요.”

지난해 연재를 중단한 ‘둔주곡 80년대’는 자전적 대하소설 ‘변경’의 후속작으로, 이 작가의 분신인 소설가 이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5·18민주화운동 등 80년대 시대상을 다뤘다.

1987년 연합뉴스와 만난 소설가 이문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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