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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상통화로~”…1분 후 “다 찍혔다, 돈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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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캠 피싱’ 당신을 노린다

낯선 미녀의 SNS 친구 신청, 친근하게 접근해 야한 얘기…여성 사라지고 남성 등장

녹화된 영상으로 협박 시작, “가족에 보내겠다”돈 요구

“1차 경고다. 당사자한테 먼저 보낸다. 합의하면 동영상을 지우고 합의가 안 되면 주소록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유포된다. 조용히 마무리 짓자.” 정신이 퍼뜩 들었을 땐 이미 늦은 거였다. 조금 전까지 연인처럼 다정하게 영상통화를 하던 그녀가 돌변했다. ‘뭐가 잘못 된 걸까’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이내 스마트폰에 낯 뜨거운 동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남성이 주인공이었다. 시뻘개진 얼굴로 성적인 행위를 했다. 누구나 알아볼 만큼 얼굴이 선명했다. “계좌로 200만원을 보내라. 아니면 가족들이 제일 먼저 이 영상을 보게 된다.” 협박이 이어졌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평범한 대학생 A(19)씨가 ‘몸캠 피싱’ 피해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영상통화 1분 만에 다 털려

지난해 3월28일 강원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팀에 A씨 사건이 접수됐다. A씨는 돈을 200만원 보내고도 결국 아버지가 그 영상을 보는 걸 막지 못했다.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하다 못해 대인기피증에 걸렸다고 했다. A씨가 수사팀에 진술한 경위는 이랬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에게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들어왔다. 얼굴도 몸매도 예쁜 ‘혜은’(범죄조직이 내세운 가명)이었다. 호기심에 수락 버튼을 누르자 금방 대화가 시작됐다. “안녕? 프사(프로필 사진)가 멋있네, 몇 살이야?” “지금 뭐해?” “나는 그냥 누워서 폰 만지고 있어.” “나도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남녀는 금방 친해졌다. “우리 카카오톡으로 넘어가서 대화할까?” “좋지, 아이디 알려줘.” 좀 더 익숙한 곳으로 넘어가자 혜은이는 대화의 수위를 점점 높아갔다. “네 사진 보니까 흥분 되는데, 영통(영상통화)할래?”

그렇게 시작된 영상통화 속 혜은이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A씨도 모두 벗었다. 10초쯤 지났을까 갑자기 영상통화가 뚝 끊겼다. 혜은이가 카카오톡으로 파일 하나를 전송했다. “지금 소리가 잘 안 들려. 이 파일을 설치하면 음질이 더 좋아지니까 이걸 깔자.”
이미 사리판단 능력을 상실한 A씨는 시키는 대로 다 했다. 혜은이의 요구에 휴대폰 화면에 혀를 갖다 대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화면 속에서 성적행위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1분이 흘렀고 영상통화가 종료됐다.

알고 보니 모든 게 가짜였다. 영상 속 여성이 무서운 아저씨로 돌변하는 데는 5분도 안 걸렸다. 혜은이가 전송한 파일을 설치하는 순간 A씨 휴대폰 속 모든 연락처와 문자메시지는 중국에 있는 서버로 전송됐다. 휴대폰 화면에 혀를 갖다 대라고 했던 건 A씨의 얼굴이 정확하게 찍히도록 유도하는 수법이었다. 혜은이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화면 뒤에는 남성 조직원이 있었다. 여러 경로로 입수해둔 야한 영상을 채팅화면으로 내보인 것이었다.

■악질적 수법

이 사건은 피해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범죄수법이 매우 잔인해 수사팀도 혀를 내둘렀다. 신고가 어려운 피해자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며 끊임없이 고통을 가했기 때문이다.

조직원들은 처음에 몸캠 피싱 피해자에게 “우리의 목적은 돈”이라며 합의금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요구한다. 돈을 보내면 영상을 지워줄 것처럼 말하지만 결코 한 번에 끝나는 법은 없다. 하나의 영상을 둘로, 다시 셋으로 쪼개놓고 그 다음 영상도 남아 있으니 돈을 추가로 보내야 한다고 협박한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까지 지운 건 복사본이었고, 원본 파일을 지우려면 기술이 필요하니 돈이 또 필요하다”면서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조직은 송금 내역을 캡처해 보내라고 요구하는데, 여기 적힌 통장잔액을 보고 ‘얼마까지 뽑아먹을 수 있겠다’고 소위 간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한 중년 남성 피해자는 단계별로 차례 차례 뜯겨 총 1억원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피해자 B씨는 가진 돈이 없다며 버텼지만 가족에게 영상이 전송되자 결국 1년 동안 겨우 모은 3,000만원을 고스란히 바쳤다. 조직은 그것도 모자라 대출을 강요한 뒤 탈탈 털어갔다. 심지어 B씨에게서 통장까지 빼앗아 대포통장으로 이용했다.

피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신고 자체가 어려웠다”고 그간의 고통을 털어놨다. 몸캠 동영상을 찍혔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럽고, 영상 유포로 사회에서 매장되는 게 두려웠던 탓이다. 나중에 수사팀이 따져봤더니 피해자들의 신고율은 14% 정도에 불과했다.

경찰 수사 결과 몸캠 피싱과 조건만남사기를 합쳐 이 조직에 당한 피해자는 3,700여 명, 피해액은 55억원에 달했다. 그물망처럼 서로 이어진 조직의 계좌는 120개나 됐다. 모두 타인 명의의 통장(대포 통장)이었다.

경찰은 한국내 자금책과 인출책, 대포통장 공급 총책 및 모집책, 판매자 등 30명을 일망타진해 6명을 구속했지만, 중국에 있는 총책은 검거하지 못했다. 중국의 총책이 여전히 또 다른 활동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언제 다시 피해자들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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