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스포츠

이범호, 만루포로 시작한 눈물의 은퇴식

Print Friendly, PDF & Email

‘만루 홈런의 사나이’ 이범호(38·KIA 타이거즈)의 은퇴식은 만루 홈런으로 시작됐다.

13일 오후 광주 북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9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대 한화 이글스의 경기, 6회초 무사에서 KIA 이범호가 팬들에게 인사를 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07.13. hgryu77@newsis.com

1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이범호의 은퇴식 시작을 알리는 만루 상황 퍼포먼스. KIA 선수들이 각 루를 채웠고, 이범호는 타석에 들어서 김선빈과 마주섰다.

이범호는 김선빈의 배팅볼을 노려보다 3구째를 노려쳤다. 타구는 좌중간으로 큼지막하게 날아갔고,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이범호는 은퇴식 전 치른 은퇴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 때도 만루 찬스였다. 5회말 기적처럼 찾아온 2사 만루의 찬스에서,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이범호는 6회초 수비 때 곧바로 교체됐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눈물을 훔쳤다.

경기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이범호가 퍼포먼스를 만루포로 장식하자, 경기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범호의 이름을 연호했던 2만500명의 만원 관중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범호는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고 펄쩍 뛰며 포효했다. 환한 ‘꽃미소’를 지으며 각 베이스에 서 있던 동료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돌았다.

만루포와 함께 환하게 지었던 미소는, 경기장이 어두워지고 가족들의 응원 영상이 상영되자마자 눈물로 바뀌었다. 전광판 속에 가족들을 바라보던 이범호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범호는 부모님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이범호의 아내 김윤미씨도 목이 메어 힘겹게 송별사를 읽어내려갔다.

김윤미씨는 송별사를 통해 “저는 ‘꽃범호’라는 범호씨의 별명이 참 좋다. 이 시간 이후로 ‘꽃범호’라는 별명을 못 듣는 것 아닐까 아쉽기도 하다”며 “20년간 프로야구 선수로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달려와 준 것을 아내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당신이 어떻게 프로야구 선수가 됐고,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 정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자리가 더 감격스럽고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항상 야구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당신 옆에서 야구 선수의 아내로 저의 삶도 행복했다. 그라운드에 서 있는, 3루에 서있는 당신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앞으로 당신이 가는 길 최선을 다해 응원하겠다. KIA 팬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송별사를 맺었다.

이어 고별사에 나선 이범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고별사를 읽는 동안에도 좀처럼 눈가에서 눈물이 가시지 않았다.

이범호는 “늦은 시간까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를 채워주신 KIA 팬들께 감사하다. 멀리서 10년 전에 이범호를 보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와주신 친정팀 한화 팬들에게도 감사하다”며 “은퇴를 결심하고 팬 분들의 가득 차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떠나는 저에게 박수를 보내주시기 위해 많은 자리를 가득 채워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운을 뗐다.

마지막 만루 찬스에 아쉬움이 남았던 듯 이범호는 “아까 만루 타석에서는 진심으로 환호성이 너무 커서 정말 감동받았다. 끝날 때까지 홈런으로 보답하지 못한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관중들은 “괜찮아요”라고 연호했다.

공교롭게도 KIA는 이날 한화에 5-10으로 졌다. 이범호는 “우리 선수들이 젝 은퇴한다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졌다. 열심히 해준 우리 선수들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범호는 오랜 시간 함께한 코치진과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고마움을 감추지 못헀다. 코치진 뿐 아니라 동갑내기 김주찬을 향해 “친구, 놔두고 가서 미안하네”라며 더 목이 메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지완, 최형우, 양현종, 김선빈, 안치홍, 김민식 등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고맙다는 말을 전한 윤석민의 이름을 언급한 후 “다시 부활할 수 있도록 힘을 많이 달라”고 했다.

이범호는 “2017년 11월 1일, 우승 멤버들과 함께 했던 제 생애 첫 우승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며 “한화 팬들에게는 너무 죄송하다. 우승을 못 하고 가서 죄송하고, 한화도 우승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사과했다.

고별사를 마친 후 이범호는 차량을 타고 3루에서 1루로 향하며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외야에서는 직접 걸어다니며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잠시 멈췄던 이범호의 눈물은 동료들과 포옹을 나누며 다시 쏟아졌다.

현재 KIA의 주전 3루수인 박찬호에 등번호 ’25번’을 물려주기로 한 이범호는 직접 유니폼을 전달했다. 시즌 중 은퇴하는 것도, 등번호를 물려주는 것도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이날 경기 전에는 이범호가 아들 황군, 딸 다은양과 함께 시구 행사를 해 의미를 더했다. 황군이 홈플레이트와 마운드 사이에 서서 힘차게 공을 던졌고, 포수 자리에 앉아 공을 받았다. 다은양은 타석에 섰다.

또 이범호의 대구고 시절 코치였던 박태호 현 영남대 감독과 이범호를 1라운드에 지명한 정영기 현 강릉 영동대 감독이 모두 경기장을 직접 찾아 꽃다발을 전달해 의미를 더했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가드 양동근도 절친의 새 출발을 축하했다.

‘꽃범호’ 이범호는 그렇게 KIA 팬들의 가슴 속에 추억이라는 꽃을 남기고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선수’ 이범호는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이범호는 지도자로서 KIA 유니폼을 다시 입을 것을 약속했다.

은퇴식 후 이범호는 “KIA로 돌아올 자신이 있다. 이렇게 멋지게 은퇴식을 해줬는데, 지도자 생활의 시작은 KIA에서 해야한다. 여기서 좋은 선수들을 많이 길러낼 수 있도록 연구하고 배우고 오겠다. 지금 제가 가진 최고의 목표”라며 “선수 때 2000경기 출전, 300홈런, 1000타점이 목표였다면 지도자로서는 더 많이 우승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현역 시절 만루에서 강한 면모를 자랑했던 이범호는 “KIA에 안타 치는 선수는 많은데 멀리치는 선수가 부족하다.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고싶은 이유”라며 “안타 치는 선수들은 만들 수 있지만, 장타를 치는 선수들은 쉽게 만들 수 없다. 외국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것, 한국 선수들이 모르는 것을 배우고 와서 가르쳐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jinxijun@newsis.com

Categories: 6. 스포츠

Tagged a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